나만 유독 못난 것 같아 숨고 싶은 당신에게
지금 시각이 새벽 두 시를 좀 넘었네요. 상담실 책상 위에 놓인 커피는 이미 다 식어서 표면에 얇은 막이 생겼고, 창밖에는 소리도 없이 가늘게 비가 내리고 있어요. 사실 고백하자면 저도 오늘 하루가 참 버거웠습니다. 15년이나 남의 마음을 만져주는 일을 했다면서 정작 제 마음 하나 추스르지 못해서,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괜히 울컥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거든요.
누가 보면 '심리 전문가라는 사람이 왜 저래?' 싶겠지만, 원래 의사가 자기 병 못 고친다는 말도 있잖아요. 근데 저는 오히려 이런 제 모습이 좋아요. 완벽하지 않아서, 매일 흔들리고 넘어지면서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려고 애쓰는 이 인간적인 냄새가 좋거든요. 아마 이 글을 클릭하신 당신도 저랑 비슷한 밤을 보내고 계시겠죠. 퇴근하고 돌아와 화장도 못 지우고 침대에 쓰러져서, SNS 속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사진을 보며 '나만 왜 이럴까' 자책하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이 글까지 닿으셨을 거예요.
진짜 괜찮아요.
정말로요.
당신이 오늘 유독 예민했거나, 갑자기 화를 냈거나, 아니면 바보같이 엉엉 울어버린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거든요. 우리 마음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작은 방어군'들이 치열하게 전투 중이거든요. 오스트리아의 할아버지 프로이트가 말했던 그 거창한 '방어기제'니 뭐니 하는 것들, 사실 그거 별거 아닙니다. 그냥 우리가 너무 아프지 않게 마음이 스스로에게 쳐주는 일종의 '에어백' 같은 거예요.
도대체 왜 나는 애처럼 굴고 싶어지는 걸까요?
어제 상담실을 찾아온 서른 중반의 지영 씨(가명)가 그랬어요. 회사에서 엄청난 실수를 하고 상사한테 깨진 날이었는데, 집에 오자마자 남편한테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리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대요. 그러고는 자기가 너무 한심해서 죽고 싶었다더라고요. 지영 씨는 자기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며 제 손을 꼭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어요.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지영 씨, 그건 지영 씨 마음이 살려고 발버둥 친 거예요.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보니, 잠시라도 짐이 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던 거죠."
이걸 심리학에서는 '퇴행(Regression)'이라고 불러요. 갑자기 아기 목소리를 내거나, 안 하던 어리광을 피우거나, 입술을 깨무는 사소한 습관들. 그거 사실 고장 난 게 아니라, 마음이 보내는 신호거든요. "나 지금 너무 힘들어, 나 좀 안아줘, 나 좀 예뻐해 줘"라고 말하고 싶은데, 어른이라는 껍데기 때문에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니 몸과 행동이 대신 말해주는 거죠.
그러니까 제발 그런 자신을 미워하지 마세요. 그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너무나 잘 버텨왔다는 증거니까요.
미워하는 마음을 '사랑'으로 포장하느라 지친 건 아닌지
가끔 그런 적 없으세요? 정말 꼴 보기 싫은 직장 동료나 시어머니, 혹은 친구가 있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 앞에서만 서면 더 과하게 친절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요. 목소리 톤이 한 옥타브 올라가고, 억지웃음을 짓느라 얼굴 근육이 파르르 떨리는데도 "어머, 정말요? 너무 멋지시다!" 같은 영혼 없는 칭찬을 남발하게 되는 순간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거울을 보면 자괴감이 밀려오죠. '나 진짜 가식적이다, 징그럽다' 하면서요.
근데 이거,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이라는 꽤 고급스러운 방어기제예요. 내 안의 미움이나 공격성이 밖으로 튀어나가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정반대의 감정인 '과도한 친절'로 덮어버리는 거죠. 뜨거운 냄비 뚜껑을 맨손으로 잡을 수 없어서 두꺼운 행주로 감싸는 거랑 비슷해요. 당신이 가식적인 게 아니라, 그만큼 그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혹은 내 안의 선함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 중인 거예요.
현타가 올 때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야, 너 오늘 진짜 고생했다. 싫은 내색 하나 안 하려고 진짜 애썼다. 너 참 대단하다."
비난 대신 토닥임을 먼저 건네야 해요. 그래야 그 가짜 웃음 뒤에 숨은 진짜 당신이 숨을 쉴 수 있거든요.
"다 내 탓이야" 혹은 "다 네 탓이야"의 뫼비우스 띠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으면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모든 화살을 나에게 돌려 자학하거나(내사), 아니면 모든 원인을 남 탓으로 돌려버리거나(투사).
솔직히 남 탓하는 게 좀 더 편하긴 하죠. "부장님이 지랄 맞아서 그래", "세상이 미쳐 돌아가서 그래".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어요. 근데 이게 반복되면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남한테 맡겨버리는 꼴이 돼요. 반대로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내가 부족해서 그래"라고 자책하는 분들은 마음의 병이 깊어지기 쉽죠.
이런 분들한테 제가 항상 드리는 말씀이 있어요.
"합리화(Rationalization)'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하세요!"
흔히 합리화라고 하면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아뇨, 상담실에서는 합리화도 아주 훌륭한 생존 도구예요. 이솝우화의 여우가 못 먹는 포도를 보며 "저건 신 포도일 거야"라고 돌아서는 거, 그거 정신건강에는 최고거든요. 가질 수 없는 것에 매달려 자신을 갉아먹느니, 적당히 이유를 만들어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게 훨씬 성숙한 거예요.
오늘 일이 좀 안 풀렸나요?
에이, 오늘 운세가 안 좋았나 보죠. 아님 아침에 마신 커피 원두가 별로였거나요.
그렇게 슬쩍 넘겨버리세요. 모든 것에 '내 잘못'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마세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이 지옥 같은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할까요?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기제 중에 유일하게 '성숙한' 딱지가 붙은 녀석이 있어요. 바로 '승화(Sublimation)'예요. 내 안의 우울, 분노, 불안이라는 지저분한 흙탕물을 걸러서 맑은 샘물로 바꾸는 과정이죠.
누구는 미친 듯이 운동을 해서 땀으로 울분을 쏟아내고, 누구는 일기에 욕을 한 바가지 쓰면서 문학 작품을 만들고, 또 누구는 저처럼 이렇게 새벽에 글을 쓰며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제 글도 사실은 제 안의 결핍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승화의 과정이거든요.
성숙하다는 건 대단한 게 아니에요. 내가 지금 어떤 방어기제를 쓰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아, 내가 지금 너무 힘들어서 애처럼 굴고 싶구나.'
'내가 저 사람이 미워서 더 오버해서 친절하게 구는구나.'
이렇게 내 마음을 제3자의 시선으로 지켜봐 주기만 해도, 날을 세우던 감정들이 조금씩 유해집니다. 마음의 근육이라는 게 그래요. 하루아침에 딴딴해지지 않아요. 조금씩 찢어지고 아물면서 단단해지는 거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충분히 성숙해질 준비가 된 사람이에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용기를 낸 거니까요.
오늘 밤엔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그냥 푹 잤으면 좋겠어요.
발 뻗고,
아무 생각 말고.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보다는 아주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숨 쉴 수 있기를 제가 진심으로 빌어드릴게요.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귀하고,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괜찮으니까요.
상담실 불은 이제 꺼야겠네요.
잘 자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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